기숙사 무작위 선발이 남긴 주거 불안
개강 직전 결과 통보·거리 미반영 제도...지방·해외 거주 학생 부담 집중
김현주 박해솔 장하은 최영광 kims4all@gmail.com
2/3/2026 7:54:06 PM 등록 | 수정 2/3/2026 7:57:4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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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확인하고 멘붕이 왔어요. 한 학기 생활이 통째로 흔들리는 느낌이었죠.”
대전에 본가가 있는 강다연(국문·24)씨는 1학기 생활관 정기선발 결과를 확인한 직후 신촌 원룸 시세부터 검색했다.
“무악학사는 우정원보다 경쟁률이 낮다길래 당연히 선발될 줄 알았다”며 “본가인 대전에 있던 상황이라 더 머리가 아팠다”라고 말했다. 개강이 다가온 2월 초, 남은 매물은 많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와 계약도 하루 만에 끝내야 했다. 강 씨는 “여러 부동산을 돌았지만 결국 좁고 비싼 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 “공정성 때문”... 기숙사 무작위 선발 제도의 이면은?
지난 8일 연세대학교 기숙사에서 겨울학기 정기선발 신청이 마감된 가운데, 연세대 기숙사 선발 제도를 둘러싸고 학생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학부생이 거주할 수 있는 기숙사는 무악1·2학사와 우정원이다. 직전 학기 성적이 1.7 이상이면 지원 가능하며, 1학기 정기선발은 ‘부모님 서울 비거주’ 학생만 입사 가능하다. 반면 2학기와 계절학기 정기선발 및 추가선발은 부모 거주지와 관계없이 지원 가능하다. 정기선발은 무작위 추첨으로, 추가선발은 잔여석에 한해 선착순으로 진행한다.
가장 많은 학생이 지원하는 정기 선발이 무작위로 운영되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기숙사 신청 시기마다 본가와의 거리나 주거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현행 제도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연세대 생활관 행정팀에 따르면 무작위 선발을 실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정성 때문이다. 행정팀은 학교 특성상 외국인 학생 수가 많아 거리제를 도입할 경우 국내 학생들이 선발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생활관 운영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현행 무작위 선발 제도 아래 기숙사 수용 비율은 약 내국인 70%, 외국인 30% 수준이다.
이를 고려하면, 무작위 선발은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실제로 현행 제도에서 내국인과 외국인 학생의 기숙사 수용 비율은 수치상 일정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 공정성을 갖춘 제도로 바라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제도의 이면에는 해결되지 못한 지방 학생들의 주거 문제가 존재한다.
■ 개강 직전 선발 결과 통보…학생마다 다른 기숙사 미선발의 무게
무작위 선발 제도상 학생들은 선발 결과를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선발 결과는 개강 직전에 통보돼 미선발된 학생들은 짧은 시간 안에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통학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방·해외 거주 학생들에게 기숙사 미선발은 즉각적인 주거 공백으로 연결된다.
본가가 천안인 이씨(화학·20)는 “정기선발에서 탈락한 뒤 이미 매물이 빠진 신촌 일대를 전전하다 월세 55만원짜리 3평 원룸을 급히 구했다”며 “발표가 나는 순간부터 집을 구해야 하는데 그 부담은 지방 학생에게 훨씬 크다”고 했다.
서울에 본가가 있는 학생들은 미선발 후에도 통학이라는 선택지가 남지만, 지방·해외 거주 학생들은 공백이 된 주거 문제를 즉시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적·경제적 부담은 제도적으로 보완되지 않은 채, 오로지 학생 개인에게 전가되고 있다.
■ 기숙사 대안 되기 어려운 신촌 주변 자취 현실
기숙사 미선발 이후 통학이 어려운 지방 학생들은 자취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높은 임대료와 열악한 주거 여건 속에서 연세대 대학가의 자취 환경은 기숙사의 적절한 대안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연희동 인근 G 공인중개사 김씨는 “대학가 원룸 건물은 노후화된 경우가 많다”며, “건물주들이 주로 혼자 살며 월세를 받기 때문에 적은 보증금과 비싼 월세의 형태가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 외 지역에 거주하는 연세대 학생 50명을 대상으로 학교 주변 주거 환경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8%가 신촌 근처 상권 물가와 월세가 학생들이 자취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답했다.
공인중개사 김씨에 따르면 학생들이 거주하기 괜찮은 매물들은 기숙사 선발 결과가 나오기 전에 모두 소진된다. 결과가 발표된 후에는 매물 경쟁이 심할 뿐더러, 상태가 좋고 저렴한 매물은 거의 남지 않는다. 이유정(국문·24)씨는 “기숙사 미선발 통보를 받았을 때는 개강까지 시간이 많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미선발된 학생들이 동시에 자취방을 알아보기 때문에 좋은 집은 빠르게 사라지는데, 당시 해외 본가에 있었기에 집주인과의 소통 및 계약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어렵게 거처를 마련하더라도 학생들의 불안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자취는 기숙사 거주에 비해 상당히 높은 경제적 부담을 야기한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세대 기숙사비는 월 기준 20만~30만 원대가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5.6%를 차지했다. 반면 신촌 인근 자취 월세는 ▲70만~80만 원(33.3%) ▲ 60만~70만 원(33.3%) ▲50만~60만 원(18.5%) 순으로 집계됐다. 기숙사 거주와 비교했을 때, 자취 시 월 주거비 부담이 두 배 이상 증가하는 셈이다.
보증금과 월세뿐만이 아니다. 계절별로는 관리비와 공과금, 냉·난방비와 전기세 등 각종 추가 지출이 겹쳐 주거 부담은 더욱 커진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취생의 월세 외 관리비는 한 달 기준 최소 5만 원부터 계절에 따라 많게는 20만 원에도 이른다.
■ 제도 이면의 주거 공백을 보완할 대책 찾아야
자취가 기숙사 미선발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선발로 인한 주거 공백을 해소할 해법은 결국 기숙사 선발 제도의 개선으로 귀결된다. 서울대학교 기숙사는 선발 시 ‘거리 반경’을 포함한 정량 평가 방식을 적용한다. 특히 소득분위(60%)를 최우선 요소로 반영해 취약 계층 학생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반면, 연세대 기숙사는 선발 과정에서 소득분위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설문조사에서도 현행 기숙사 선발 제도에 대한 불만과 개선 요구가 다수 확인됐다. 선발 제도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0%가 ‘불만족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무작위 선발 방식이 불공정하다고 지적하며, ▲본가와의 거리 ▲소득분위 반영의 필요성을 꼽았다. 이 밖에도 ▲선발 결과 일정 단축 ▲실제 통학시간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기숙사 선발 제도는 학생들의 주거 환경과 학습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수치적 공정성만을 따지는 무작위 선발의 이면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강다연(국문·24)씨는 “무작위 선발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끝나면 부담은 결국 미선발된 학생에게만 남는다”라고 말했다. 현행 기숙사 선발 제도의 이면에 존재하는 학생들의 주거 불안을 고려하는 제도적 고민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