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이션 소개팅?...효율성 앞세운 '신 연애법'
로테이션 소개팅의 확산과 우려
조준혁 이진서 조정현 박우주 kims4all@gmail.com
2/3/2026 7:38:17 PM 등록 | 수정 2/3/2026 7:38:52 PM
기획
문화

"’취미가 뭐냐?’는 질문 대신 '야근 많나요?' '주말에 연락 잘 되나요?' 같은 조건 확인 질문만 오갔어요. 마치 회사 면접관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박모 씨는 처음 참석한 로테이션 소개팅 현장에서 느낀 낯선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여러 이성을 돌아가며 만나는 자리에서 그는 "내가 누구랑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정신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이른바 ‘로테이션 소개팅’ 현장의 한 단면이다.
로테이션 소개팅은 말 그대로 회전하듯 상대를 바꿔가며 진행된다. 한 번의 이벤트에서 최대 10여 명을 만나고, 마음이 맞으면 연락처를 교환하는 식이다. 정해진 시간 내 짧게 대화를 나누는 만큼 부담이 적다. 한 상대에게 시간을 오래 쓰지 않아도 되는 ‘속전속결’ 구조다.
◇ 효율성 앞세운 새로운 만남 문화의 부상
로테이션 소개팅이 확산된 배경에는 팬데믹 이후 한국 사회 속 만남 문화의 변화가 있다.
코로나 시기 데이팅앱 사용이 급증하면서 온라인 중심 만남에 대한 피로감과 신뢰도 문제가 커졌다. 상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오프라인 방식에 대한 수요가 다시 높아졌다.
MZ세대의 생활 방식도 유행을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다. MZ세대 56명 설문(자체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60%는 “로테이션 소개팅의 인기는 MZ세대의 효율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문화와 맞닿아 있다”고 답했다. 청년층은 학업이나 자기계발 등의 이유로 여가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에 여러 사람을 짧은 시간에 만날 수 있는 로테이션 소개팅은 ‘시간 대비 효율이 높은 만남’으로써 부상하고 있다.
SNS와 커뮤니티의 영향도 유행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기와 인증샷, 브이로그가 공유되면서 로테이션 소개팅이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주최 업체들이 신원 인증 등 안전장치를 강화하면서 이용자 신뢰도도 올라갔다.
여가 플랫폼 프립(Frip)의 임수열 대표는 “요즘 젊은 세대는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선호한다”며 “1대1 소개팅보다 편안한 분위기가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프립의 소개팅 모임 수는 300개를 넘었고, 주최자 수도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또 다른 모임 업체 비긴어게인의 백승지 대표는 “누적 15만 명이 참여했다”며 “나 역시 여기서 남편을 만났다”고 밝혔다. 로테이션 소개팅은 점차 하나의 산업이자 제도화된 만남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참가자들 “장점은 분명하지만 아쉬움도”
자체 실시한 인터뷰 결과, 참가자가 로테이션 소개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의 키워드는 '유행'이었다.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마케팅이 흥미를 유발해서 실제 이용으로 이어졌다는 후기가 많다.
한 대학생 참가자는 "인스타그램에 많이 뜨길래 궁금하기도 했고, 친구랑 한번 가보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가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직장인 참가자 또한 인스타그램을 통해 로테이션 소개팅을 접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 새로운 사람을 자연스럽게 사귀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생각했기 때문"에 로테이션 소개팅에 참여했다는 동기도 밝혔다.
그러나 새로움만으로는 참가자들에게 만족감을 주기에 한계가 있었다. 로테이션 소개팅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린 말은 비슷했다. “부담은 덜한데, 깊이는 얕다.” 짧은 시간에 여러 사람을 만나는 방식은 확실히 가볍다. 마음이 움직일 만큼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대학생 참가자는 “짧게 나마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분위기를 가볍게 즐길 수 있어 신선했다”며 “그러나 한 사람을 충분히 알아보기에는 시간이 제한적”이라고 응답했다. “의미 있는 연결로 발전시키기엔 아쉬움이 남았다”는 것이다.
직장인 참가자의 체감은 더 현실적이었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직군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게임도 소소하게 진행돼 재미있었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이성이 없으면 끝날 때까지 억지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불만을 덧붙였다. “처음부터 말 놓는 분위기가 억지스러웠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개선 요구도 직설적이었다. “대화 시간이 조금만 더 길거나,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추가되면 만족도가 올라갈 것”이라는 제안이 나왔고, “게임을 더 다양화했으면 한다. 2부쯤 되니 지루했다”는 말도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대화 시간을 늘리거나 프로그램을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효율 데이트의 그늘 – 깊이 부족, 만족도 낮음
로테이션 소개팅은 화제성에 비해 만족도는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MZ세대 56명 설문(자체 조사)에서도 참가 경험자 중 “만족” 응답은 없었고, 평가는 “보통·불만족”에 몰렸다. 짧은 대화 위주의 구조는 형성되는 관계의 깊이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로테이션소개팅 운영사 솔로오프도 “짧은 대화 속에서 깊은 이해는 어렵고, 첫인상 중심의 평가가 많아질 수 있다”고 인정했다. 신원 인증이 있더라도 낯선 사람을 만나는 데 대한 부담이 남아 있다는 응답도 나왔다. 아직은 운영 완성도와 신뢰를 더 쌓아야 한다는 의미다.
서울대 곽금주 교수는 “상품을 고르듯 사람을 선택하는 방식이 확산되면, 인간관계에서도 실용성과 효율성만 따지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하대 이은희 명예교수는 “선택지가 많다는 인식은 눈만 높아지고 결혼은 미뤄질 가능성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 의미 있는 만남을 위한 고려가 필요
로테이션 소개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만남 이후’를 설계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참가자들이 제안한 것처럼 대화 시간을 늘리거나, 단순한 게임보단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행사 이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사후 매칭이나 후속 모임을 마련하는 방안도 있다. 무엇보다 서로의 조건을 확인하기보다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는 문화가 함께 자리 잡아야 한다. 빠른 만남이 일상이 된 시대,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드는 방식은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